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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6   심천 출장기 (3)


심천 출장기
Biz Diary/N×× | 2007/09/26 17:12

예정보다 20분 쯤 늦게 이륙한 비행기는 4시간을 넘게 날아간 뒤 심천공항에 내려왔다. 심천은 생각보다 멀었다. 길게 줄 서있는 택시를 못 본 척하고 민박집 아줌마가 얘기한 버스를 찾았다. K568. 20위엔. 훠어처장(기차역)까지 택시 못지않게 빠른 미니버스이다. 차 안에서 심천의 첫 인상을 눈에 담았다. 높은 건물. 화려한 네온사인. 중국이 자랑할 만한 개발과 성장의 상징. 도시 전체가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행운의 도시.


1. 출장을 가기 전에


저돌적으로 밀려오는 중국산 제품은 광전자산업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3~4년 전 처음 소개된 중국의 저가제품들은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다. 중국 공장에서 쏟아지는 제품들은 바다를 건너와 인정사정없이 우리나라 시장을 집어 삼켰다. 마침에 국내 광전자 시장 전체를 휩쓸어버릴 기세이다. 전의를 상실한 국내 제조업체들은 중국산 제품을 맞닥뜨릴 때마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않고 고분이 시장을 내주었다. 급작스런 시장 가격의 하향조정은 국내 중소 광전자 제조업체는 물론 N☓☓같은 유통업체에게도 큰 혼란을 주었다.

과연 중국에서는 어떻게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은 것은 제조업체인 P사와 저녁을 먹던 자리였다. P사도 중국에서 밀려든 폭풍에 휘말려 방향키를 놓친 채 넋을 잃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목숨을 걸고 호랑이를 잡겠다는 것은 아니다. 호랑이가 어떤 놈인지 보고 한 편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광학산업계 최대 전시회로 자리 잡은 심천광전자전시회는 올 해로 벌써 9번째이다. 이제 광전자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mustsee가 되었다. 전시회 일정이 나오자마자 모든 작업스케줄과 납기를 전시회 다음으로 미뤄버렸다.


2. 참관기


첫날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자 조바심부터 났다. 전시 오픈시간을 체크하고 곧바로 전시장으로 향했다. 우선은 전시장의 규모와 시설에 놀랐다. 마치 S.F영화의 우주정거장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은 밖에서 건물 구경만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림잡아도 COEX 세 배는 넘을 듯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 넓은 전시장이 광학관련 회사들로 빼곡히 찼다. 광전자관련 중국기업이 이렇게 많다니. 입이 닫히지 않았다. 회사 이름을 둘러보니 중국기업 틈 속에서 눈에 익은 회사가 보였다. T사이다. T사는 이번 전시에 참가한 유일한 한국기업이다. 반가운 마음에 전시 부츠에 들렸다. 다른 중국기업에 비해 한산했다. 국내에서는 최대라인을 갖춘 T사이지만 여기서는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다.


대강 훑으며 한바퀴 둘러보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한국에서 갖고 있던 중국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했다. 얕잡아봤던 그들의 제품과 기술력은 이미 우리를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을 넘나드는 실력을 뽐내고 있다.

광전자산업에서 선두를 지키던 일본기업도 오늘은 들러리이었다. 중국기업들 틈 사이에서 간신히 부츠를 차려놓고 체면을 지키고 있다.

중국기업의 신화는 비단 중국 광전자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자동차, 반도체, IT, 건설, 조선 등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은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중국기업의 속도에 주눅이 들어버린 국내의 기업들은 성장이 멈춰버린 아이처럼 외소하게 보인다.


- 쩌거 뚜어챠우치엔?


얼마입니까? 아침마다 기를 쓰고 다니는 학원에서 건져 온 몇 안 되는 중국어이다. 물건을 보면 제일 먼저 가격표를 들쳐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도 취급하고 있는 같은 제품을 이 나라에서는 과연 얼마에 팔고 있을까? 아니 얼마면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눈여겨봤던 부츠에 들어갔다. 서투른 중국어로 얼버무리자 해외영업을 담당한다는 여자 매니저가 우리를 맞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중국계 기업의 수출파트 실무자는 거의가 여직원이다. 깍듯하게 목례를 하며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기선을 제압하려 든다. 사람을 세워놓고 한 참이나 탐색전을 펼치더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빙빙 돌리기만 했다. 결국 정작 알고 싶던 가격은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약속이나 한 듯 다른 부츠에서도 가격정보는 쉽게 주지 않았다.

아마도 N☓☓의 정체도 알아야겠고, forecast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대략적인 가격정보는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전시회도 마찬가지겠지만, 전시회에 출품된 제품의 가격을 물어보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다. 전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는 기업들이 짝을 찾는 곳이다. 각자 갖고 있는 힘, 이를테면 기술력, 제조능력, 혹은 구매력, 영업력이나 마케팅능력 등을 이용하여 각기 맞는 인연을 만나 비즈니스를 창조하는 곳이다.


- 중국의 무한한 시장


전시회 규모가 방대하다보니 동일한 품목 하나가 열 곳이 넘는 전시대 위에 올려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각각의 공장에서는 매일같이 한국 공장 한 달치 생산량에 육박하는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가격도 아니고 기술력도 아니었다. 바로 중국의 시장이었다. 이런 거대한 기업들이 쏟아져 내는 생산물량을 매일매일 소화하고 끄떡없는 중국의 내수시장은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보였다.

그 동안 머리 아픈 수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메이꽌씨!(걱정 없다)’며 큰소리 탕탕 치는 중국기업들도 내수시장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수시장의 성장은 공산당 집권 이후 잔뜩 위축되었던 중국인들의 상업적 저력은 세계무대로 끌어내었다. 그리고 상업의 발달로 부를 거머쥔 중국인들은 다시 시장을 넓히는 선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그들의 상술은 가히 세계적이다. 광동성에서 뻗어나간 화교들이 세계 방방곡곡으로 뻗어나가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가를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차이나타운에 가면 중국인 특유의 상술이 똑똑히 볼 수 있다.



3. 전시회를 다녀와서


사흘간의 출장 중에서 전시회는 꼬박 이틀을 둘러보았다. 비행기에 탈 때만 해도 과연 중국에서 무엇을 얻어 올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본전이상은 건진 출장이었다.


첫째, 중국의 광전자업체를 만났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난 중국의 광전자기업은 N☓☓의 비즈니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들 중에는 당장이라도 거래를 틀 수 있는 매력 있는 업체도 여럿 있다. 물론 그들의 생산능력과 품질과 거래조건은 따져봐야 알 일이고, 거래를 위해 다소 번거로운 절차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경쟁력이 퇴색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든다. 그렇다고 당장 거래처를 바꿀 계획은 없다. 다만 새로운 대안을 확보했다는 의미이다.

역으로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중국생산업체들의 소스는 국내 시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발 빠른 업체라면 이들 한 업체와 손을 잡고는 Q4쯤에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내어놓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장은 또 한번의 지각변동이 있게 된다. 특히 용산에서 건너온 유통기업들은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을 듯하다. 

우리에게도 선택권은 있다. 가만히 시장의 재편성을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공격적인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빠른 속도로 하향 평준화되어버린 국내광케이블시장에서 우리는 지금껏 끌려 다니기만 했다.

이번에 만난 중국기업들과 어떻게 전략적 제휴를 맺느냐에 따라 오히려 시장을 이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저가형 제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쇼핑몰을 만들면 어떨까?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섣불리 벌릴 수도 없다. 시간을 두고 조목조목 따져 봐야한다. 온라인 쇼핑몰을 만드는 일은 쉽지만 운영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하고 재고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존 사업체와 어떻게 선을 그을 것인가가 큰 숙제이다.


둘째, 중국산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

인간은 귀를 통해 들오는 정보보다 두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신뢰하는 편이다.

NBA에서 야오밍의 활약을 본 사람은 중국 1위가 세계 최고라는 임을 인정한다.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우리가 본 중국산 제품은 세계 최고라 해도 흠 잡힐게 없다. 한국에서는 구경도 못하던 제품들도 즐비했다.

우리나라 손님에게 ‘이 제품은 중국산이요.’ 하면 써보나마나 저가에 저급한 제품이겠지 지레짐작하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하지만 이도 머지않아 추억속의 얘깃거리가 되리라. 이미 광전자시장에서 made in korea라는 merit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다시 말해두지만 국내의 광전자 제조업체는 국내생산이라는 아집을 버리고 이쯤에서 해외공장을 물색하러 발을 돌려야 한다.


- 중국 현지공장에 성공한 발 빠른 T사 

이번 전시회에 당당하게 이름을 걸어놓은 T사도 한 때는 중국기업의 성장으로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내 조직에 칼을 대고, 중국으로 라인을 확장하였다. OEM생산 초창기 made in china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존 거래처를 잃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를 문제 삼는 고객은 없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제품과 품질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의 수많은 기업들이 본사조직을 다운사이징하고 있다. 생산 공장은 중국에 R&D센터는 인도로 옮긴다. 어디서 만드느냐를 중요하게 여기는 고객은 없다. 상품은 어떤 기술로 어떤 품질로 만드느냐로 선택받는다.


셋째, 광컨버터시장


전시회를 한번 둘러본 다음 신규 아이템을 개발하겠다는 것은 서부시대에 금맥 찾겠다고 나서는 카우보이와 무모함이 다르지 않다.

이번 광전자전시회로 출발하기 전에 당장 사업에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오겠다는 욕심은 애시 당초 책상서랍에 두고 나왔다. 세세한 아이템을 쫒다가는 오히려 큰 그림을 놓칠 수도 있다. 대신 시장의 트랜드를 읽어보자고 다짐을 했다.


- 광컨버터시장의 약진

이번 전시회에서 새로 개발된 다양한 광컨버터제품들이 가장 눈에 띄었다. 참가한 대부분의 광케이블업체들은 자체 광컨버터제품을 선보였다. 불과 3~4년 전만해도 간혹 소규모로 OEM으로 생산되던 제품은 이제 자체 브랜드로 걸렸다. 그 배경에는 이더넷 기반의 네트워크환경이 Optical 인터페이스로 바뀌면서 수요가 급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광컨버터는 시장규모가 너무 작아 사업적인 매력이 없었다. 그에 반해 국내 컨버터 시장의 잠재력만 보고 사업에 일찍이 뛰어든 업체도 있다. 지금은 이미 광컨버터 시장의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였다. 바로 G사이다. G사는 국내 시장의 성장을 한 발 앞서 읽어내고는 당시 광컨버터업계의 선두기업인 미국의 F사를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얼마 뒤 미국 F사의 컨버터제품에 대한 독점 계약권을 따낸 G사는 놀라운 속도로 국내 광컨버터 시장을 통일하였다. 미국 F사의 마케팅 전략과 G사의 순발력있는 영업력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재작년부터는 부동의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시장에도 관심이 많던 F사는 이번 전시회에도 독립부츠를 열어 놓았다. 잠시 들려 인사를 건네니 한국에서 성공한 G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G사는 F사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유통 비즈니스의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G사를 딱 한번 찾아갔던 적이 있다. 작년 봄인가 우리가 찾고 있던 제품에 대한 구매협의차 들렸다. 우리만큼이나 젊은 회사였는데 공교롭게도 사장이 나와 동갑이었다. 마치 잘 짜여진 축구팀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한번 벤치마킹해볼 만 한다.


- 비즈니스의 포지션

새로운 아이템을 사업화하기 전에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 비즈니스 포지션이다.

비즈니스 포지션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방법으로 물건을 팔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미 경쟁업체가 골목골목마다 자리를 잡고 있는 시장에서 포지션을 어디에 두느냐는 마치 가게 터를 어디에 잡고 노점판을 벌이느냐 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목이 좋은 곳이라면 무엇을 팔던지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이치와 같다. 이는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리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미 시장에서 터를 잡고 있는 이미 사업화에 성공한 광전자 부품의 제조공장을 바꾸는 일은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김밥집 주방장을 바꾸는 일쯤 된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 예를 들어 광컨버터사업을 시작하겠다면 얘기는 전혀 다르다. 사업 포지션을 어디에 둘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목표로 잡은 마켓을 정확히 조준하고 어떻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아는 만큼 겁도 많아지나 보다. 액기손가락 만한 광컨버터를 내년 신규사업리스트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4. 중국의 선택, 심천 


만리장성만큼 무모한 중국의 저력은 공산당이 주도 하의 벌이는 사회간접자본의 개발사업에서 쉽게 볼 수 있다. '21세기 최대의 역사(役事)'이자 '물의 만리장성(萬里長城)'으로 불리는 중국 싼샤(三峽)댐만 봐도 그렇다. 환경주의자를 앞세운 미국과 유럽 각국의 정부는 강경한 목소리로 반대를 했고, 대재앙의 가능성과 효율성에 의심을 품은 공산당 내부세력도 크고 작은 우려의 목소리가 냈지만, 중국정부는 개의치 않고 밀어 붙였다. 이제는 그만 둘 수 없는 선을 넘었다. 그 외에도 경제개발구 건설, 서부대개발 등은 대륙인다운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개발이다. 개발의 높이와 개혁의 깊이만큼 치명적인 부작용도 사회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중국발전의 큰 원동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심천은 중국인들에게 자본논리를 받아들인 그들의 선택이 성공하였음을 증명해주는 상징적인 샘플이다.

다행히 심천의 미래에 대해서는 중국의 주식, 부동산 등 경제시장을 바라보듯 낙관적이다. 그 이유는 중국인들이 닦아 놓은 심천의 인프라에 있다. 그것은 고속 성장에 필요한 충분한 밑거름되어주었다.


1) IT인프라


가장 드라마틱하게 발전한 것은 무엇보다 IT 인프라이다. 중국의 통신기술은 유선보다는 무선에서 더욱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마치 중국의 비디오세대가 VTR을 건너뛰어 DVD를 선택한 것과 다르지 않다. 한반도의 마흔 배가 넘는 광활한 대지를 선을 이어 다스릴 엄두가 나지 않았나 보다. IT인프라는 내수시장은 물론  인근국가까지도 하나로 묶어주는 새로운 통일 수단이다.


심천사람들의 IT 욕구는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핸드폰은 이제 어린 학생들한테도 손목시계보다 흔한 악세사리이다. 그들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핸드폰 채팅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심천 시내 곳곳에는 왕빠(PC방)가 서울의 PC방 못지않게 널려있다. 그 안에는 온라인게임에 빠져든 중국 청소년들이 가득차있고, 그들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하나의 구심점으로 뭉치기도 한다.

노트북과 핸드폰만 있다면 일상적인 업무처리에 불편함이 없다. 웬만한 비즈니스호텔에는 객실마다 인터넷접속이 가능하다. 공항도착과 동시에 핸드폰 버튼하나만 누르면 로밍이 된다. 심천 지하철 안에서도 스팸매세지 하나 놓치지 않을 정도로 한국과 중국의 이동통신 사이에는 물샐 틈이 없다.

적어도 IT적으로는 중국은 이미 다른 나라가 아니었다.


2) 교통 인프라


서울 못지않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심천 시내의 스카이라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원하게 뚫린 도로망이었다.

심천 시내를 가로지르는 메인도로는 도심을 두 동강으로 시원하게 갈라놓았다. taxi를 타고 어디를 가든 이 메인도로에만 올라타면 목적지까지는 금방이다. 그러니 도로 위에서 아까운 시간을 버리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메인도로를 건너려는 보행자는 우스꽝스러운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아마도 도로망이 최우선으로 그린 뒤, 도시를 만든 인상이다. 도시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설계하여 탄생시킨 계획도시라 가능했던 일이다.


3) 심천의 비즈니스호텔


비즈니스여행에서 잠자리는 중요하다. 고단한 몸이 다시 충전되지 못하면 다음 날 일정을 소화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신혼여행처럼 특급 호텔을 고집할 수도 없다. 적당한 가격에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쉴 수 있는 비즈니스호텔은 성공 출장의 필수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첫째 날 우리가 선택한 민박집은 실패였다. 출장준비를 하면서 심천 민박집에 대한 정보를 구했다.

우리가 선택한 **민박은 여러 포탈사이트에서 상당히 호의적인 댓 글을 달고 있었다. 우리를 마중 나온 아주머니는 번잡한 도심에서 한 모퉁이 돌아 세워진 기다란 아파트의 눅눅한 15층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아파트의 한개 층은 서로 다른 번호를 나눠가져 너 댓개의 독립 가구로 쪼개졌고, 그 중 한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간 우리는 다시 몇 개로 나눠진 방을 만났다. 주인아주머니의 손짓을 따라가 간신히 컴컴한 손잡이를 하나 골라 비틀었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잠을 잘 자는 편인데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날이 밝자마자 옆방에서 곯아떨어진 L대리 방문을 두들겼다.

주인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아침식사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여기서 나머지 이틀을 더 머물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못되었다.

약간의 퍼널티를 감수하고 짐을 꾸렸다. 기내에서 접어 두었던 Lonely Planet의 추천 숙소를 펼쳤다. 민박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전따주덴이 있다. 택시를 잡아 다짜고자 지도를 가리켰다. 뭐라 뭐라 대꾸를 한다. 표정을 보니 승차거부는 아닌데. 중국어 실력을 총동원하여 귀를 기울였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하여 이름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광동사람이 구사하는 표준어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스스로 대견하다. 그 동안 갈고 닦은 중국어 실력이 요긴했다.

졘서루와 선남둥루의 모서리에 위치한 준팅호텔은 작년의 바뀐 선전따주덴의 새 이름이다. 이름을 바꾸면서 객실을 다시 꾸몄는데 침대시트와 화장실 모두 새로 지어진 호텔 못지않았다. 다행히 우리나라 러브호텔식의 외벽 타일덧붙이기식 리모델링이 아니었다. 객실요금도 1인 당 200위엔으로 합리적이고 객실마다 무료인터넷도 제공된다. 아침 조식은 별도로 15위엔을 지불해야했지만 이 정도의 조식뷔페라면 바쁜 오전을 든든하게 보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편안하고 편리한 비즈니스호텔을 찾는 여행자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덕분에 잠자리 걱정은 덜어내었다.


5. 중국에서 서비스 교육사업


누구든 중국을 다녀본 사람은 하나같이 빈약한 서비스정신을 나무란다. 소비자는 이미 보다 낳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라면 돈을 더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를 모르지 않은 업소에서도 직원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강요하지만, 정작 서비스 일선에 앉아있는 직원들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다.

왜일까? 그들 대부분 서비스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받아보지도 못했고, 배우지도 못했다. 글을 가르치지 않고 책을 읽어보라고 하는 소리와도 같다.

그렇다고 급격히 변화하는 기업 환경 속에 살아남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중국기업에게 스스로 수준 높은 서비스교육까지 전담시키는 것도 무리이다.

중국에서 서비스를 전문으로 교육하는 외주기관은 그 시장잠재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리라 본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서비스교육은 산업 외형에 비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인접한 홍콩이나 마카오는 사정이 다르다.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의 격차는 아찔할 정도다. 중국 대륙의 서비스 수준은 수년 안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웃 홍콩과 마카오는 어쩌면 그들의 미래모습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교과서 인지도 모른다.

시장의 언발란스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비즈니스 기회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서비스 교육사업을 상상해보자.

'저희가 제공하는 AAA서비스 교육을 이수하신다면, 6개월 이내에 매출의 15%가 올려드립니다. 만약 매출이 올라가지 않으면 교육비 전액을 환불해 드립니다!‘

흥미로운 사업이다. 그리고 그 교육을 이수한 업체는 명함에 홈페이지에 현관에 '스마일마크'를 달도록 할 수도 있다. 스마일마크를 본 손님은 안심하고 가게로 들어온다.

분명 이런 서비스교육은 그들의 매출증대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교육으로 성공한 회사를 찾아보자. 이마트, 준오미용실, 한국리더쉽센터의 교육담당자 몇 명이면 해볼 만도 하다.


6. 하루만의 홍콩여행


토요일 아침 광전자전시회를 들렸다가 바로 홍콩으로 가는 KCR을 탔다.

짧은 여행에서는 늘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잠자리, 볼거리, 먹을거리 셋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여행의 취향에 따라 우선순위가 나눠지는데 난 개인적으로 먹을거리를 제일 뒷자리에 두는 편이다.

심천에서 홍콩을 건너가는 가장 편리한 장소는 라우후역이다. 홍콩이 강남에서 분당가기쯤이라 여겼던 것은 착각이었다. 선 하나를 경계로 홍콩과 중국대륙은 같으면서도 철저히 배타적인 두개의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분명한 국경으로 남아있었다. 일단 홍콩으로 넘어서니 모든 것이 바꿨다. 심지어 화장실변기도 어제까지 봤던 중국산이 아니다. 세관을 지나자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은 건 빵집이다. 아직도 여기는 분명 심천 라후역의 한 구석이지만, 빵은 분명 홍콩의 맛이다. 건네 준 위엔화의 거스름돈도 홍콩달러로 돌아온다. 다행히 위엔화와 홍콩달러는 대충 비슷한 환율로 거래되고 있다.

짧은 나들이를 마치고 심천으로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소동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L대리였다. 앞서 입국심사를 마친 나는 멀찍이 L대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서 돌아가 보니 L대리 비자를 붙들고 세관원이 뭐라 한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L대리가 받아 온 단수비자가 문제가 된 모양이다. 오전에 홍콩으로 출국하면서 이미 만료되었고, 다시 입국하려면 비자를 새로 받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역시 생긴 모양만 같지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운영체제로 돌아가는 두개의 나라였다. 다행히 세관 1층에서 벌금 200위엔을 내자 바로 비자를 내주었다.



7. 에필로그를 위한 출장


이번 출장에서 가장 우울했던 순간은 심천공항에서 거금 136위엔을 지불한 우동이 형편없음을 확인할 때였다. 무슨 놈의 우동 한 그릇이 호텔 방값에 육박한담. 하면서도 주문을 한 것은 허기긴 배를 달래며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아서였다.

비싼 만큼 제값을 하면 좋았을 텐데. 중국 땅에서 일본우동을 주문한 어리석음을 조롱하듯 우동 맛은 당장 쓰레기통에 쏟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종원업의 서비스나 식당 분위기도 음식값의 10분지 1을 채우기 부족했다.

대개 어느 나라의 공항에서든 지불하는 돈의 절반만큼의 값어치라도 채워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이 정도면 공인된 사기다. 라고 생각이 미쳤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에 L대리에게 출장 소감을 슬쩍 물었다. 좋았어요! 환하게 치아를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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