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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2   광주 출장기


광주 출장기
Biz Diary/N×× | 2007/07/02 08:51

(1) 출장의 배경


광주에 가기 위해 KTX를 탔다. 대전까지는 쏜살같이 달려가던 기차가 전라도 땅에 들어서니 느림보가 되었다. 지나가는 차장언니에게 물어보니 광주까지는 KTX 전용선이 아니라 호남선을 함께 쓰고 있다고 했다. 낡은 레일 탓에 제 속력을 못 내는 기차도 내 마음 못지않게 답답하리라. 


올 해 안에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백업센터가 광주에 지어질 예정이다.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각 층간의 수직배선과 수평배선을 구축하여 각 장비들의 연동이 이상 없도록 배선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설명회도 열리지 않았지만 워낙 대형 프로젝트라 벌써부터 내노라는 업체들은 벌써부터 물밑작업을 끝마친 상태이다. 오히려 이제야 현장을 보겠다고 내려가는 우리가 한 발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프로젝트의 일정이나 마스터플랜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출장을 서두른 것은 사이트 환경을 확인하겠다는 것 외에 다른 속뜻이 있었다.

그것은 이번 출장에 동행하게 된 U과장과 끈을 맺어 보겠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어떻게 결론이 지어지든 고객사의 고급 정보를 쥐고 있는 U과장의 회사는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직접적인 거래가 없던 우리로써는 U과장 친분을 쌓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수주의 가능성을 높이는데 유리하다고 판단되었다. 현재로써는 고객의 환경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고객이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를 누가 많이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업체 선정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도 다른 대형프로젝트처럼 제안공고가 뜨면 SI업체를 기준으로 여러 벤더들이 헤쳐모여식의 편짜기가 이뤄질 것이 뻔하다.

이 과정에서 어떤 업체를 잡느냐, 잡히느냐에 따라 사업성패가 갈린다는 것은 우리나라 IT업계의 희극적인 현실이다.



(2) 광주출장


이번 사업을 담당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U과장은 다소 시니컬하게 느껴졌던 목소리와는 달리 의외로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낯선 타지의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로맨틱한 설정 덕분인지, 가벼운 면 티셔츠차림에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외로운 여행자의 행색이었다.

정장을 입은 채 그와 악수를 나누며 다소 당황했는데, 아마도 이런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목전에 둔 상황에 완전무장을 한 전투복차림은 아니더라도 꽤나 결의에 찬 눈빛에 주먹을 불끈 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상무지구 갑시다.'

때 이른 장맛비는 해 저문 광주 땅을 눅눅하게 적셔놓고 있었다.

역전에서 손님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달려오는 택시를 잡아 행선지를 말했다. 상무지구는 광주에 내려오는  길에 광주 KT에 근무하고 있는 대학선배Y에게 물어본 곳이다. 그 곳은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택지지구라 숙소도 깨끗하고 먹을 곳도 많다고 했다. 


택지개발지구라 아파트가 밀집한 조용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유흥업소 밀집 지역이었다. 화려하게 밝혀놓은 네온사인들은 길 가는 나그네의 시선을 끌어당기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모텔에 들어가 짐부터 풀었다. 온돌방을 달라고 하니 3만원이라고 했다. 모텔치고는 꽤 큰 편이었는데도 서울의 반값이다.

택시기사 얘기가 광주 경기가 형편없다더니 기웃거리는 식당마다 테이블이 한산했다. 평일 저녁 9시면 그래도 늦은 식사를 하는 손님들로 띄엄띄엄 채워져 있기 마련인데.

거리구경을 하면서 몇 군데를 둘러보다 가수 싸이의 사진이 크게 걸린 낙지집에 들어갔다. U과장은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기어코 한 잔을 들이켰다. 간만의 출장이라 벼르고 있던 모양이다.

음주실력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에 나는 초반부터 주도권을 넘겨주고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량이 차가자 조용하던 U과장의 볼륨도 조금씩 올라갔다.


U과장이 몸담고 있는 U사는 수년 전부터 고객사의 네트워크 망을 관리해주고 있는 업체이다. 때문에 다른 경쟁업체들에 비해 고객사의 담당자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어왔고, 회사 내 속사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장점을 활용하여 이번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별러왔다. 사업 준비를 위해 인력보강을 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러한 회사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작년 1차 사업에서 U사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 보기 좋게 KO 되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뒤, 그 책임을 지고 핵심 팀원 몇 명이 옷을 벗고 나갔다고 한다.

자연히 이번 사업에 U사가 걸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대 이상이다. 관련된 팀원들의 각오 또한 남달랐다.

다른 한편으로 그 기대는 팀원들의 어깨에 묵직한 부담으로 얹어졌는데, 그도 그럴것이 회사에서 이번 사업을 위해 선투자했던 비용이 이미 한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팀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소문은 이미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었다.

아무리 중차대한 프로젝트라지만 결과에 따라 사람에 손을 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넌지시 물어보니 이번 사업에 목을 매고 있는 직원들은 대부분 계약직이라 했다.

만약 이번 사업에서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직접적인 해직사유는 아니더라도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계약 연장을 포기하는 해지사유로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참 무서운 세상이고, 겁나는 비즈니스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는 회사가 현명할지도 모른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다.

'최선을 다했건만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비극이다. 하지만 사람만 줄이거나 바꾼다고 팀 승률이 올라갈까라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백번을 지더라도 이것을 단순히 비용으로 치부하고 떨쳐낸다면 결코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없다.

실패를 통한 경험을 값비싼 자산으로 바꾸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지혜와 용기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U사는 아는지 모르는지 안타까웠다.



(3) 이직의 중심축 찾기


저녁을 대충 먹고, 맥주를 마시러 갔다. 2부의 주제는 (U과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이 없었던 U과장의 지난 10년간의 행보였다. 긴 밤 내내 풀어놓아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이야기의 전말은 이러했다.


U과장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풍운의 꿈을 안고 당시 잘나가던 IT업계에 첫 발을 들어 놓았다. IMF의 폭풍이 휘몰아치자 건실했던 회사도 휘청거렸고, U과장은 뛰어내려 ‘벤처‘라는 이름의 배로 갈아타게 된다.

하지만 온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벤처열풍도 현실에서는 로또 당첨되는 확률수준의 신화에 불과했다.

난파선에서 뛰어내려 바람 빠진 보트에 올라탄 꼴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몇 가지 이유로 각각 몇 번의 이직을 거듭했건만, 번번이 그가 찾는 곳은 아니었다고 했다.


나도 직장생활을 할 때, 이직을 꿈꾸며 기대하는 것은 적당한 스트레스와 정확한 근무시간이 지켜지고, 동급 최강의 보상이 정년까지 보장되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보물찾기에 불과하다.

이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직은 직장생활에 있어서 이직은 피할 수 없는 갈림길이다.

몇 십 년 전처럼 한 회사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진득하게 다니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말할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 보다는 적절한 타이밍에 적극적이고 과감한 변신을 꾀하는 것도 때로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보물찾기에 열중하다 보면 자신의 커리어에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력관리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중심축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자신의 경력의 중심축이 무엇이냐는 명확하게 해둬야 한다.

그것을 곳곳이 세운다면 당장 1~2년이 문제가 아니라 10년, 20년 뒤에 자신이 서야 할 위치를 염두에 두고 결정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비전과 연관이 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찾지 못하고 한 해 두 해를 그 자리에 머물다 보면, 어느 새 우리의 경력은 어디로 보내야 할지 막막한 이력서 한 장으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보다 한 살이 어린 U과장은 벌써 아이가 둘이라 한다. 내년에는 학부모가 된다고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웃음 너머에는 가장이 갖는 책임감의 무게가 엿보였다.


그는 본래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IT분야로 진로를 정했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술을 배우기도 했다.

이제 와서 그가 원했던 꿈을 접은 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가족의 절대적인 지지나 적절한 지원사격은 꿈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환경적인 지원이 없다고 못한다는 법은 없다. 마지막 단추를 꿰는 일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고, 반드시 그 길로 가겠다는 각오가 선다면 뜻을 굽혀서는 안 된다.


친구 중에 K가 있다. 그도 부모님의 뜻과는 반대로 미술공부를 했다.

3대 독자인 아들을 그림쟁이로 만들 수는 없다며 완강하게 반대하시던 아버님의 뜻을 물리치고 가출까지 감행했던 그였다.

결국 그는 스스로 힘으로 3수를 하면서까지 H대에 입학했고, 대학을 마친 뒤 뉴욕에 건너 가 석사를 따고 돌아왔다. 내가 한창 직장생활을 할 때, 아직도 학교를 다니는 그에게 넌 언제 졸업해서 돈 벌래? 하며 놀릴 때도 있었지만, 직장에서 헤매고 있던 나보다 앞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그를 보며 내심 부러웠다.

지금은 지방 대학이긴 하지만 겸임교수까지 되었으니 나름 자신의 뜻을 이룬 셈이다.

누가 더 행복한 것인지. 누가 성공했는지.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감히 판단할 수는 있는 근거는 없다.

다만 K가 길을 잃지 않고 곧바르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가야 할 앞길을 훤히 밝혀주는 등대 덕분이다.



(6) 사회생활 10년, 달라진 우리들의 얼굴


미팅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KT에서 근무하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약이 있다며 난처한 목소리였지만, 몇 년 만에 내려온 후배를 이대로 돌려보낼 셈이냐고  때를 썼다.


U과장과 동행하는 길이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선배와 밥 한 끼 못 먹고 올라간다면 영 아쉬울 것 같아 양해를 구했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긴가민가하는 선배의 얼굴에서 묘한 세월의 흔적을 느꼈다. 얼핏 보면 캠퍼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와 하나도 바뀌지 않은 그대로인데, 다시 하나하나 살펴보면 눈가에 입주위에 사회에서 먹은 십년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직장이 KT여서 그런지, 아니면 지나가는 어깨가 덜 부딪치는 광주여서 그런지, 어딘지 느긋하면서도 적당히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나름 조직에서 해야 할 책임과 부담이 막중하겠지만, 뭐랄까. 종류가 좀 다르다고 할까? 분명 생사가 달린 일을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우리도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어언 십년이 되었다. 강산까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은 몰라 볼 만큼 크게 변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럭저럭 비슷한 솜털이 덜 가신 청년들이었지만, 이제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간 굴러먹던 각자의 역사가 슬슬 얼굴에 묻어나온다. 풋풋한 신선함은 온데간데없고 사회의 생존법칙에 익숙해진 노련미와 안정감이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사회초년생 때에 비해 직장관도 많이 달라졌다.

그 때는 친구들을 만나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급여였다. 그리고 어디서 일하는지, 몇 시에 퇴근하는지, 일은 고되지 않은지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제는, 군대 간 것도 아닌데, 하는 일이 편하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도 없다.

어차피 각자의 고생이야 비교할 필요 없이 모두들 대단할 것이다.

급여는 여전히 민감한 부분이긴 하지만, 퇴근시간이 빠르다고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얼마나 안정적이냐가 더 중요하다.

안정적이라는 의미는 얼마나 길게 다닐 수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래봤자 직장생활의 수명은 이제 오십보백보이다. 어차피 평생을 책임지어 줄 수 있는 직장은 없다.

그 보다는 자신의 비전과 일치하는 job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조직이 안정적이고 고용을 보장한다 해도 나의 비전과 동떨어진 일이라면 안정적인 직장이 될 수는 없다.


다시 10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모여 지금과는 또 다른 무언가를 비교하며 서로를 부러워 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사회적 정년, 아이들 교육문제, 늘어가는 양육비 타령을 할 것이다. 자식자랑이라도 할 거리가 있는 녀석들은 운이 좋은 편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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