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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2   이직, 삶의 연금술인가? (3)


이직, 삶의 연금술인가?
Biz Diary/Biz를 위한 잡동사니 | 2006/09/22 11:15

1.우리회사 YH : 결혼과 이직

다시 시작한 운동 덕분에 이번 주 아침은 늘 기분이 좋다.
굿모닝! 다들 출근 잘했어? YH에게서 돌아오는 출근인사가 평소와 다르다.
누구보다 밝은 YH 표정이 오전 내내 펴지지 않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바로 위 상사 눈치만 보면 되었지만, 지금은 직원 하나 하나의 신상변화에서 컨디션까지 살펴야 한다.
무언가 심각한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시간에 YH가 면담을 요청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와 단둘이 할 얘기라.. 데이트신청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것 말고는 면담꺼리가 없었다.
아무튼 두가지 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였다.

뜻밖에도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는 말로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신랑직장이 천안이라 회사를 다니기 힘들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신랑은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동갑내기 친구인데, 시댁에서 맞벌이를 극구 반대한다는 것이다.

낭패다. 아니 휠씬 큰 타격이다. YH는 회사에서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처음 출근했을 때의 YH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누가봐도 충청도시죠? 할 법한 어리숙한 말투와 딱 어울리는 외모.
경리를 맡기에는 조금은 많은 나이였지만, 누구도 갖지 못한 '성실'과 다른 동료를 배려하는 '성품'으로 지금껏 회사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안살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YH가 맡아오던 경리업무는 신입사원을 충원해서 인계를 하고 앞으로는 보다 중요한 일을 맡기기로 한 터였다. 

YH의 빈자리를 메워 줄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적당한 사람을 뽑더라도 YH가 수행하던 업무를 소화해 내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직원들과 잘 융화할 수 있을런지도 의문이다.
이것은 회사가 입는 눈에 보이는 손해라 할 수 있다.

역시 결혼은 인생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일이다. 벌써 서른이 넘은 나이이니만큼 결혼 자체는 축복해야 마땅한 일이다. 다만 이것이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나와 함께 회사를 꾸려가고 있는 누나에게도 비슷한 고민을 한 시기가 있었다.
누나가 결혼 하기 전 아빠회사에서 근무했던 5년을 인생의 암흑기라 부르곤 한다.
코엑스에 있던 본사 사무실을 정리해서 남양주 공장 2층으로 사무실을 옮겼을 때도 누나는 아빠 곁에 남아 용기를 드렸다.
하지만, 누나 자신도 가라앉는 배에서 떠나야 할 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결혼이라는 핑계로 아빠 회사를 그만 두었다.
시댁에서는 집에서 매형의 내조를 하기를 기대하셨다. 하지만, 누나는 다시 일을 하고 싶었다. 결국 시댁과 친정을 모두 설득하고 꿈에 그리던 보통 회사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렵게 들어간 자리인지라 회사 일은 누나에게 자기 일 만큼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자연히 회사와 거래처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이것이 지금의 A××을 만드는 기초공사가 된 셈이다.

만약 어려웠던 아빠회사에서 누나가 좌절했거나, 결혼 후 취업을 강행했던 용기를 갖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결혼'과 '이직'이 누나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는 욕심과 용기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남자들은 가정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능력있는 아내를 원한다. 치열한 세상에서 든든한 버팀목의 역활까지 기대하고 있다.
YH는 결혼 후 바로 다른 직장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 세대 아내들처럼 YH에게도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는 늘 고민의 대상이 될 것이 틀림없다.


2. 후배DH : 커리어를 다시 바꿔야 하나

지난 주에는 평소 연락이 뜸하던 후배들이 번갈아가면서 나를 찾았다.
먼저 후배DH가 대뜸 회사를 그만 두고 싶다는 것이다.
왜?
힘들어요.
당연하지. 쉬운게 어디있냐?
DH는 남다른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후배이다. 전 직장에서 네트워크 엔지니어를 뽑을 때 DH를 추천한 것이 나였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근무하던 3년 동안 내가 맡은 아이템에 대해 technical support를 도맡아 해 준 후배이다.
내가 회사를 그만 둔 뒤 불어 닥친 후폭풍에 가장 많이 시달렸던 후배이기도 하다.

내가 떠난 뒤 DH의 스토리는 이러이러했다.
IT산업 불경기의 영향으로 네트워크 제품들의 실적이 계속 떨어지자 조직에서는 더 이상 엔지니어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DH는 자의반 타의반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영업으로 전격 트레이드되었다.
엔지니어의 생리를 버리고 영업을 새로 배우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생리적으로 참을성이 부족하다. 대기업도 예외일 수는 없다. 시간이 갈수록 숫자의 압박은 더 조여왔고, 성급한 마음에 손을 댄 아이템들이 좋은 성과가 나올리 만무했다. 이제는 자심감을 잃어 버린 것이다.

그러던 중 네비게이션을 제조하는 ×업체에서 DH에게 접촉을 하였다. ×업체에서는 국내에는 어느 정도 입지를 갖춘 자사의 네비게이션제품으로 유럽시장 개척할 해외영업 담당자를 찾고 있었다.
게다가 해외영업 경험은 전무한 DH를 위해 3개월 정도 현지연수를 시킬 계획도 갖고 있었다. 객관적인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DH에게는 벌써 세번째 커리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DH에게 보다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
엔지니어로서, 그리고 수입시판 담당자로서 성공의 맛을 보지 못하고서 이직을 하기에는 영 모양이 좋지 않았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고비를 넘지 못하고, 다른 길을 방향을 트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새롭게 선택한 길이라고 탄탄대로 일리는 없다. 아니 오히려 더 험난한 여정이 놓여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도망갈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아직 DH는 미혼이다. 벤처기업은 대기업과는 또 다른 생리를 갖고 있다. 벤처라는 이름처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보다 큰 조직에서 안정적인 자리에 있을 때 결혼을 하는 것이 무난해 보였다.


3. 후배JS : 절이 싫으면?

다음 날 JS이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였지만, 데리고 나가 밥을 사주었다.
DH보다 상태가 더 심했다.
이대로 회사를 다니다가는 오래 못 살것 같다고 했다.
얘들이 도대체 세트로 왜 그러지? 가을이 무슨 이직의 계절인 줄 아나.

JS의 기본적인 문제는 업무 자체에 있었다. DH의 문제와는 종류가 달랐다.
JS가 처음 우리 팀으로 입사한 것은 영업이였다. 하지만 얼마 뒤 지원부서로 배정을 받아 3년 정도 근무를 했고, 작년에 다시 지원을 해서 영업부서로 내려왔지만, 아무래도 영업과는 안 맞는다고 털어놓았다.
또 지난 1년 동안 힘들게 기획해서 이제 겨우 빛을 보게 된 LG Philips LCD 허브프로젝트(일종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창고업이다.)가 LPL측의 일방적인 취소로 물거품이 되어 버린 모양이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건만 허탈감이 꽤 큰 듯했다.
팀에서 수행하는 나머지 사업들도 졸지에 일관성을 잃고 뜬 구름 잡는 식으로 흘렸버렸고, 팀이 이런 모양이니 내년에 아예 팀을 없애는니 마느니 소문도 무성한 모양이다.

얼마 전에 면접을 다녀왔다는 H사는 경기도 이천에 공장을 갖고 있는 제조업체이다. 거기에서는 무슨 마케팅인지 전략기획인지 그런 분야에 지원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천은 집에서 너무 멀다. 지금은 아이 때문에 처갓집 근처에서 살고 있지만, 이직을 한다면 정상적이 출퇴근이 불가능 할 것이다. 결국 집을 얻어서 이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제수씨가 일하고 있는 사업장과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고, 아이 양육도 큰 악재이다.

다행히 JS의 팀장은 사람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JS와도 얘기가 잘 통하는 것 같고, 우선 결정하기에 전에 팀장과 상담을 먼저하라고 했따.
영업부서에서 탈출(?)해서 보기 좋게 홍부팀 대외협력부으로 옮긴 Y과장의 전례도 있고 하니, 다시 다른 지원부서로 올려 달라고 했다.
얘기가 잘 안풀린 다면 그 때 이직을 생각해도 될 일이다.

이직에 대해 무조건 반대할 생각은 결코 없다. 나 또한 회사를 옮기면서 많은 기회를 만날 수 있었다.
어차피 이직은 위험한 배팅이다. 어떻게 보면 위험하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이때처럼 자신의 인생계획에 대해 머리 아프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회사 안에서는 일에 치이고, 집에 가서는 나름대로의 일상에 부딪쳐 정신없이 흘러보내다 보면, 자신이 가는 길이 산인지 바다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기 마련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이직을 고민하는 시간에 잠시 삶의 쉼표를 찍어 놓자. 조급한 마음을 떨치고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마스터 플랜을 세울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자. 나 또한 첫 직장에서 두번째 직장으로 옮기기 전에 자그만치 9개월 동안이나 긴 쉼표를 찍었던 적이 있었다.

새로운 일터를 선택하기 전에 여러가지 리스크에 둘러쌓여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새로운 업무, 새로운 사람, 새로운 버스노선, 새로운 점심메뉴, 새로운 주차장 등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를 선택했다는 것은 이런 리스크를 담보할 수 있는 비전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돈에 가치를 많이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휠씬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할 것이고, 자신이 사랑하고 하고 싶은 일에 가치를 둔 사람이라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위치를 얻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 단순한 도피처로써 이직을 선택했다면 이것은 오산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조직에서 떠나기만 하면 지금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에서도 해방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녁도 먹이지 말고 그냥 재워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구질구질한 문제들은 지금의 자리에서 부숴버리기를 강력하게 충고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그것들은 당신이 어디로 옮기던지 귀신같이 찾아내서 못살게 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천당같은 직장은 없다. 조금 편안한 지옥이 있을 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다.
잠시 비굴하지 못해 부러지고 꺽이는 사람, 유연하고 탄력적인 사고방식으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의 절을 떠나 다른 절에 둥지를 틀더라도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비굴을 조금 다른 의미(Be Cool)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절을 찾기 힘든 때에는 가까운 교회라도 알아봐야겠지만 말이다.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것은 본인에게는 물론 회사에게도 큰 손해이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것은 빨간 불이 깜빡깜빡 들어올 만한 중대한 위기상황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축구경기에 비유하자면 주전선수 한 명이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는 꼴이다.
어쨌든 남아있는 10명은 경기를 계속해야 한다.
이때 그 동안 쌓아 온 조직력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사실 조직력의 바탕에는 신뢰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직원과 직원 사이, 그리고 회사와 직원 사이, 서로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신뢰는 선수들의 체력과 비슷한 어떤 것이다.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training으로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 놓여 있는 신뢰에 금이 간 상황이라면 10명이 아니라 12명이 경기를 해도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글러먹은 일이다.


우리가 잘 아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온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 책에서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에게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보물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삶의 연금술이란 우리 각자에게 예정된 진정한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 어쩌면 이직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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