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우리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재화나 용역이 아닌 엉뚱한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실물거래와는 무관한 거래를 만들거나 왜곡하여 출처가 애매한 자금을 만드는 일종의 금융서비스(?)가 그것이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이런 요구가 더욱 빈번하다. 사업은 주고받는 것이라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거래 앞에서는 무슨 손을 내밀어야 할지 난처하기만 하다. 할 수 있지만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요구라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무조건 이를 무시하고 거절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았다. 고객이 이런 비정상적인 거래 아닌 거래를 요구하는 것에는 분명 나름대로의 배경과 이유가 있고, 우리도 이것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론>
1. 국내 IT영업의 현실과 영업비용의 이해
N××의 근간을 이루는 비즈니스는 케이블과 관련된 공사이다. 우리가 종속된 산업분야는 IT산업, 그 중에서도 하드웨어시장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내 IT하드웨어시장은 다국적기업이 완벽에 가깝게 점령하고 있다. 그나마 IT기업, 벤처기업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우리의 연약한 중소기업이 하드웨어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이란 고작 다국적군의 진입로나 유통경로 한 자리를 따내는 것뿐이다. 이런 어수선한 IT산업의 짜투리시장마저 서슬이 퍼런 대형 SI업체의 횡포에 늘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SI업체는 생리적으로 무자비하다. 자신의 이익에 반할 경우, 주저하지 않고 중소 IT업체들에게 무자비한 실력행사로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이다. 이런 험난한 IT시장에서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모한 비즈니스를 개척하느니 차라리 다국적군의 비위를 고루 살피면서 동시에 SI업체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몸조심, 입 단속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나마 N××은 케이블과 포설서비스라는 외지고 이채로운 시장을 일구면서, 걸프전보다 삭막한 다국적군과의 전쟁과 6.25보다 비열한 국내 SI업체들 간의 전투에서 때로는 그들을 돕고 때로는 그들을 속이면서 살아남았다.
치열한 전투에는 용맹한 전사들이 있기 마련이다. 여러 전장에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각 기업을 대표하는 영업사원들은 바로 이들이다. 최근 몇 년간 IT시장에 불어 닥친 한파로 인해 신규시장은 꽁꽁 얼어붙었고, 각 기업의 존망을 책임지고 있는 영업사원들은 조직의 안팎에서 동시에 밀고 들어오는 압박에 숨을 가누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이들은 적의 진지(경쟁회사의 고객사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혹은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살과 같은 영업이익을 깍으면서도 쉽게 백기를 들지 않는 투사들이다.
영업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네 가지 있다. 첫째는 지략이다. 현대영업전에서는 끝까지 가보자는 무대포정신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영업상대의 약점을 분석하고 공략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둘째는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전투력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 아니면 서비스이든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셋째는 우수한 영업사원이다. 지략과 전투력을 실전에서 적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없다면 승리도 있을 수 없다. 넷째는 영업비이다. 위의 세 가지가 아무리 훌륭하다하더라도 매끄럽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윤활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를 KO시킬 수 있는 넉넉한 총알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영업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회사에서 지원받는다. 하지만 실전에서 뛰고 있는 영업사원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전진은커녕 자기자리를 지키기도 빠듯하다고 난리이다. 이것은 무능한 지략과 전술의 부재가 원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고객이든 간에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걸 맞는 스킨십과 수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윤활유와도 같은 돈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용도의 영업비는 우리나라에서 IT영업에 있어서는 필요악이다. 더욱 문제는 이를 조성하기 위해 변칙적인 수단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보급물자가 바닥이 난 영업사원들이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 갖은 변칙을 동원하여 개별적으로 혹은 조직적으로 총알을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전투에 임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판국에 엉뚱한 곳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것을 보면 심히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단지 그들의 탓할 것도 아니다. 충분한 보급량이나 지원없이 승리만을 요구하며 전쟁터로 내몰고 있는 기업도 문제이고, 합리적인 영업비나 현실적인 접대비 한도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세무당국의 관행도 문제이다.
신문을 보니, 지난 29일 전국 지방국세청장과 107개 세무관서장이 모여 올해 세정운용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올 해 세무정책은 기업의 투명성 검증을 통한 불법정치자금 차단이 핵심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이따금 우리를 난감해하는 요청이라 해봤자 이런 발표에 주눅이 들 정도의 수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계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이것은 안방마님 몰래 딴 주머니를 챙기는 것만큼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다. 여기에도 지켜져야 할 rule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익명성과 비밀 보장이다. 정상적인 거래가 아닌 만큼 당사자 쌍방 모두 입이 무거워야 한다. 무언가 흔적을 남긴다면, 나중에라도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여 서로에게 큰 짐이 될 수 있다. 둘째는, 소요되는 수수료에 대한 투명한 기준이다. 불투명한 거래일 수록 오해의 소지가 남게 마련이다. 거래에 앞서 명확하게 해 두어야 나중에 뒤탈이 없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실제 계산서에 기재된 금액과는 별도로 여러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따라 요청업체가 부담해야 할 것이다. 비록 정상적인 거래는 아니더라도 거래는 거래인 만큼 일종의 수수료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은 거래risk를 담보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셋째는 거래의 순서이다. 자금의 집행은 반드시 앞선 매출의 입금을 확인한 후에 가능하다. 이것은 만의 하나 거래가 깨질 것에 대비한 방어책이기도 하고 회사의 cash flow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2. 영업의 기술, 현대 영업의 trend분석
앞서 현대 영업의 trend는 고객별 customization된 맞춤영업이라 얘기한 바 있다. 두 당 몇 백 만원을 호가하는 해외전시회 등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돈을 뿌려도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영업사원이 있는가 하면, 적당한 타이밍과 양념을 곁들인 크지 않은 비용으로 소속 회사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야 마는 영업사원도 볼 수 있다. 이는 분명 영업사원의 역량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떻게 고객의 기호를 분석하여 차별화된 맞춤영업을 제시하였냐는 전략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장비 영업이라고 해서 5공화국 때처럼 구매담당을 데리고 고급 룸싸롱을 들락거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필드를 주름잡았던 선배들을 졸라 흘러간 영업 무용담을 들어보면, 대개 충무로 어디 고객사 근처 지하다방에 죽치고 앉아서 퇴근시간 되기를 기다리다 고객을 픽업해서는...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셋 중 하나였다고 한다. 술이냐. 여자냐. 아니면,, 둘 다냐. 구식이었지만, 순수하고 정감가는 영업이었다. 요즘 영업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시대가 바뀐 만큼 고객의 취향도 다양해졌고 그에 따라 영업도 세분화되었다. 술 접대보다는 골프접대가 비용대비 더 효과적이다. 골프접대도 기왕이면 해외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 좋다. 술이나 운동을 즐기지 않는 고객이라면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연티켓도 좋고, 호텔숙박권도 좋다.
이렇게 고객이 필요로 하는 영업의 방식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기업에서 감당하고 처리할 수 있는 영업의 형태와 한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이것은 마치 느리고 답답한 공교육의 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뛰쳐나간 학부모들이 사교육시장에서 다양한 교육욕구를 채우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실과도 흡사하다. 이런 시스템적인 모순과 속도의 불일치의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기형적인 교육현실이듯이,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쌓이기만 하는 영업비용은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여기저기서 째깍거리게 될 것이다. 그 예정된 폭팔 또한 이 시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변화에 민첩하지 못하고 둔감한 기존의 틀과 여기서 채울 수 없는 시장의 욕구의 충돌’의 한 예가 될 것이다.
세무당국은 엄격한 잣대로 인해 기업의 회계 상 처리 못하는 영업비용들은 축적되고, 결국 지하경제로 내려오게 된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음성화된 자금이 사용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상적인 구매의 형태, 유리처럼 투명한 구매process가 보장되는 영업환경이라면 이런 과외활동 성격의 영업은 낭비가 될지도 모른다. 경쟁회사와 동일한 환경에서 성능테스트를 마치고, 이를 통과하거나 객관적인 자격을 갖춘 업체만을 대상으로 최저가 경쟁 입찰을 거쳐 낙찰자를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매과정에서 제품의 성능과 가격요소 외에 관여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보이는 인맥과 보이지 않는 줄로 얽혀있는 우리나라 IT시장에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단지 구매process를 바꾼다고 해서 영업의 role이 없어진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가격경쟁력도 실력이고, 제품의 성능도 실력이지만, 영업이나 마케팅과 같은 부분도 경쟁업체와 우열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이다. 우수한 영업사원이라면 이런 교과서 밖에 실리는 부분에 대해서도 실력을 발휘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영업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더욱 유능하다고 할 수 있겠다.
3. 영업비용의 음성화로 인한 결과
작년 말, 업체마다 동이 난 접대비를 메우느라 난리였다. 미처리된 영업비용을 처리하기 위한 은밀한 거래 상대자를 골라 짝짓기하면서 결국 시장자체가 왜곡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1) 엉뚱한 프로모션
국내 전산장비 시장의 실력자 중에서 H사가 있다. 다국적기업과 손을 잡고 외산장비를 수입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이따금 장비공급뿐 아니라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하는 SI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자사가 공급하는 메인장비에 종속되는 중소 장비나 부품들은 H사에서 일괄 매입하여 턴키방식으로 고객과 공급계약을 체결한다. 여기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제품들이 스위치와 각종 어답터카드 그리고 케이블이다. 이렇게 SI역할이 주어지면 업체의 성격도 SI의 그것을 고스란히 닮게 된다. 자연히 프로젝트가 지속되는 한 H사의 입김은 무시무시하다. 담당 영업사원이 손가락 하나만 튕기더라도 밑에 줄 서 있는 업체들에게 돌아오는 충격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End user와 관계가 좋고 사전영업이 탄탄했다하더라도 H사로부터 정식 발주서를 받기 전까지는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심지어 발주서를 받은 후라도 담당 영업사원의 눈 밖에라도 나면, 납기를 미루거나 수량을 줄이는 것쯤은 우습게 벌어진다. End user에게 하소연해봤자 디테일한 세부계약까지 관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괜스레 다음 사업에도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이렇게 막강한 담당 영업사원이나 PM(Project Manager)의 변덕스런 입맛은 업체입장에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변수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H사의 마케팅 담당이 우리를 찾았다. 영업부서 내부적으로 협의하고 있는 것은 판매촉진 프로그램에 참여할 의사가 있냐는 것이었다. 얘기인즉 H사에서 우리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소정의 인센티브를 영업담당에게 주자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H사에서는 장비를 수입하면서 번들로 들어오는 수입케이블이나 기타 중국산 저가 케이블보다 우리 제품을 우선 구매할 것이다. 자연히 판매 촉진의 효과는 크겠지만, 프로그램의 해석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OK캐쉬백 같은 적립식 포인트 카드처럼 구매금액의 일정부분을 고객에게 환원한다는 심플한 논리로 이해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색안경을 끼고 본다면 영업 리베이트가 아니냐고 추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여기서 눈여겨 살펴야 할 것은 적립금(인센티브)의 유가증권의 사용처이다. 이를 영업담당 개인적인 유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영업활동에 필요한 비용으로 충당하겠다는 취지이다. 아직은 H사의 제안에 대해 답변을 못하고 있다. 물론 당장은 양사 모두에게 눈에 보이는 이득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변론만으로 쉽사리 결정해서는 안 될 듯싶다.
2) 황당한 요구를 하는 ×이사
오더는 꾸준하게 주는 중요한 고객이지만, 어쩐지 정이 안가는 사람이 바로 ×이사이다. 영업을 하면서 아이템은 가려도 사람은 가려서는 안 된다는 말마따나 ×이사의 전화가 올 때마다 찌푸려지는 미간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목소리만은 늘 밝은 톤으로 응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이 어떻든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매너가 없다’는 것은 관계성립에 큰 장애물이 되어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사의 문제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너무도 쉽고 당연한 듯이 요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요청 앞에서 우리는 진퇴양란이다. 대놓고 거절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승낙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 되풀이된다. 회사의 이사쯤 되는 직위라면 영업을 진두지휘하기에도 여념이 없을 터인데, 오히려 비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본업인 양 하다. ×이사가 맡고 있는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어야 N××의 비즈니스 기회를 넓힐 수 있다. 음성적으로 조성되는 자금 때문에 양사의 비즈니스가 위축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4. 접대비와 세금
영업을 위해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회사에서 비용의 처리가 불가능하다면 남은 방법은 두 가지이다. 영업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영업을 포기하는 것은 회사 문을 닫겠다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영업사원이 개인 돈을 써가면서 회사 일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영업비용에 대한 부담은 조직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도대체 잉여금을 사용해서 영업활동을 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접대비 쓰임은 세법에서의 정해 놓은 항목과 한도에 제한을 받게 된다. 회사가 영업활동을 통해 발생한 비용이 이런 저런 이유로 세무당국에 의해 거부될 경우 회사는 막대한 추징금을 물게 된다.
결국 회사는 이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세무당국과 숨바꼭질을 시작하게 된다.
1) 영업비용 = 접대비?
영업비용을 충당하는 것 중에서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정상적인 방법은 그것을 접대비 예산에서 털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회계적인 접대비로 인정받는 것이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가장 편리하고 빈번하게 사용되는 현금을 사용할 경우 간이영수증의 금액이 한 업소에서 5만원을 넘을 수 없다. 지출액이 5만원을 넘길 경우 반드시 간이영수증을 한 장 더 챙겨야 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법인사업체의 경우 원칙적으로 개인명의의 카드사용은 비용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법인이라면 법인카드를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신상에 좋은데, 말이 좋아 신용카드이지 신생법인의 경우 단 몇 만원도 외상이 안 된다. 법인카드를 사용하려면 예금을 들어야만 하고, 그 한도액도 예치 금액의 80%를 넘을 수 없다. 추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연체금까지 담보로 잡아두기 위해서라나.
게다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터는 50만원이 넘는 접대비의 경우 상대방의 주민등록번호를 포함된 상세 접대내역이 증빙되어야 접대비로 인정받을 수 있다. 불필요한 유흥접대를 없애자는 취지야 충분히 공감을 하는 일이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면서까지 접대에 응하는 고객은 본 적도 없고, 정부에서 기대한 접대문화 개선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
연간 접대비 한도 금액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기본적으로 중소기업이 접대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금액은 1년에 18백만원이다. 이 외에 매출금액에 따라 20/10000의 범위 안에서 지출액이 추가로 인정받는다. 즉 외형이 많을수록 인정받을 수 있는 접대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업의 현장을 다녀보면 접대비는 늘 부족하다. 국내기업의 영업 관례상 접대비의 지출은 조직의 피라미드계층 중에서도 상위층에 집중되어 있다. 임원급의 접대금액은 그 절대금액에서 실무자가 포진한 중간층에 비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결국 임원들이 일 년에 몇 번 라운딩이라도 나가게 되면, 나머지 실무자들에게 돌아오는 접대비는 식사 몇 번하기에도 달랑달랑할 정도로 남게 된다. 물론 접대비를 대폭 늘여서 실무자들까지 골프를 쳐도 남을 정도로 넉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차원적인 한도금액의 통제만으로는 접대비 지출의 퇴폐적인 관행을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접대문화의 왜곡과 접대비 조성의 음성화만을 키울 뿐이라는 생각이다.
2) 법인세에 떠는 이유
법인세란 법인이 한 해 동안 얼마를 벌었느냐에 따라 일정 세율을 적용하여 나라에 내는 돈이다. 나라에서 정한 법인세율은 간단하다. 소득금액, 1억 이하 까지: 법인세 13%, 주민세 1.3% = 14.3% 소득금액, 1억 초과 금액: 법인세 25%, 주민세 2.5% = 27.5%
즉, 많이 번 회사는 많이 내고 적게 번 회사는 적게 내는 차등 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세법에서 얘기하는 소득금액과 실제 법인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실질소득과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법인사업체들은 세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인위적으로 그 차이를 벌리기 위해, 다시 말해 ‘나는 적게 벌었다’를 증명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증빙을 만들어 줄 세무사와 회계사들에게 고액의 세무조정료를 건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영업비용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매출을 부풀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매출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이것은 분명 법인세를 줄이려는 갖은 노력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질소득에 비해 오히려 소득금액을 늘어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즉 회계 상으로 뻥튀기한 매출만큼의 영업이익으로 더 잡히게 된다. 게다가 법인세는 단순히 당해연도 이익에 대한 세금으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높게 책정된 소득금액으로 인해 높아진 소득율은 그 다음 해에 이익률을 결정할 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공 매출에 힘입어 법인 설립 3년 만에 6%대의 이익을 내었다고 신고한 회사가 있다고 치자, 이 회사는 다음 해 실질 소득이 소득금액에 못 미치더라도 마이너스 신고하기는 어렵다. 그랬다가는 세무당국의 조사리스트에 올라가기 십상이다.
우리 회사도 법인으로 전환한 첫해부터 동종업의 다른 회사들에 비해 매입 자료가 부족해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일반적으로 법인설립 1기(사업개시년도)에는 마이너스 소득으로 신고해도 무방하다. 아무래도 회사를 시작하는 첫 해에는 수입보다는 지출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의 개인 사업을 양도 양수하는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법인 설립비용으로 충당할 만한 자료가 빈약했다.
그러다 보니 제1기부터 소득율을 3%대로 맞추어 신고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는 우리 회사가 신설법인치고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 했다. 하지만, 나름 세무조정을 통해 적절한 조율을 한 결과였다. 이렇다보니, 다가오는 2006년 제2기 신고를 놓고 ××회계법인에서는 벌써부터 난리가 났다. 세무조정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득신고의 기준이 되는 것은 업종별 전국 평균 소득율이다. 우리 회사가 포함되는 제조업의 경우 거의 10%에 육박한다고 한다. 문제는 올 해와 내년은 물론 앞으로 어떤 세무전략을 가져 갈 것이냐이다. 제2기는 적어도 5% 대로 소득율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 ××회계법인의 조언이다. 그래야만 세무당국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마다 소득율을 조금씩 끌어 올려서 사업개시 5년이 지나면 최소한 업종 통계치인 10%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부가세 10%도 한꺼번에 납부하기 힘들 때도 있는데, 평균소득율을 맞춰서 신고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를 피할 수 있는 편법도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세무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정기간(정기세무조사의 대상이 되는 5년 미만이다)이 지나면 폐업신고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대표자 명의만을 바꿔서 신규로 사업자를 내는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매출을 분산하고 수입금액을 나누기위해 별도 법인을 새로 설립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모두 한두 번이면 바로 들통이 나고 마는 얄팍한 편법에 불과하다. 큰 포부를 갖고 사업체를 꾸려나가는 견실한 법인체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다.
개인의 세금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세금에 있어서도 그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납세자와 세무당국 사이에 신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의 세무행정을 둘러보면 우습지도 못한 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투명해야 할 납세 신고에 각종 편법과 속임수가 난무하고 있고, 세무당국은 이를 싸잡아 ‘촌놈 겁주기’식의 권위로 세정운용을 펼치는 것도 문제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특히 세무조사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모든 사업자를 막론하고 허튼 실수 몇 개쯤은 눈감고도 잡아낼 수 있도록 양성된 사람들이 세무서의 조사과 기술자들이다. 세무조사에는 5년에 1번꼴로 받는 정기조사와 비정기조사가 있다. 그 중에서도 경계 1순위는 비정기조사이다. 무언가 냄새를 맡고 출동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보면 어느 해는 돈을 왕창 벌수도 있고, 어느 해는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기 마련이지만, 매출대비 소득율이 동일업종의 평균소득율 보다 현저히 낮게 신고할 경우 세무당국에서는 이를 냄새의 징후로 판단한다. 이런 경우 세무당국에서는 해당업체에 대해 탈세협의라는 의혹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면서, 불성실신고자로 규정하여 관리대상으로 편입시킨다. 이 업체는 법인설립 5년 미만일지라도 불시에 세무조사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올 해 대선을 겨냥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얼마 전 신문에 반가운 기사가 실렸다. <기업의 투자를 살리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현행 25%인 법인세율을 단계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법인세율은 기업의 투자 수익에 직접 영향을 주므로 세율을 낮출 경우 투자가 더 활발해진다고 설명하였고, 뿐만 아니라 법인세율 인하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며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치적인 발언에 불과한지 어떤지 그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우선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5. 멸종위기의 자료상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법인세 부담을 피하고 손쉽게 비자금을 조성하고자 속칭 자료상을 찾아가 세금계산서를 사는 업체가 많았다.
자료거래란 실물 이동이 없었는데도 세금계산서가 오고 가고 또 실물이동과는 다른 세금계금계산서가 교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자료상에게 천만원짜리 가짜 영수증을 살 경우 수수료로 30~50만원만 주면, 법인세 300만원 가량을 부담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욕심이 날 만한 거래이다. 자료상들은 노숙자들이나 고시촌 무직자의 명의를 빌려 사업자로 등록했다가 세금계산서를 뿌린 뒤 곧바로 폐업하는 수법으로 세무당국의 추적을 따돌려왔다고 한다.
이는 과세 근간을 흔드는 아주 중대한 법률위반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바꿨다. 웬만한 거래는, 하다못해 땅끝 마을에서 미역을 사더라도 모두 거래내역이 전산화되어 남는 시대이다. 어지간한 자료상들은 세무당국의 손바닥 위를 벗어날 수 없다. 덕분에 허위로 매출계산서를 돌리고 부가세를 챙겨서 자폭하는 자료상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게다가 무리한 자료 거래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구매자에게 돌아오게 된다.
세금계산서는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한 장으로 거래를 하는 두 개의 회사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거짓으로 신고한다는 것은 당사자 뿐 아니라 이 들과 기존에 거래를 해왔던 모든 회사에게 일파만파로 확대될 수도 있다.
차라리 기존에 거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업체에게 양해를 구해서 일정 금액을 up하여 계산서를 끊는 것이 영리한 짓이다. 물론, 계산서를 더 끊어줘야 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양사 간에 영업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또 이 경우에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실물의 이동을 증빙할 수 있는 자금의 거래가 병행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론> ; 회계와 세금. 아는 만큼 보인다.
회계를 모르고서는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동시에 세금을 모르고서는 회사가 성장할 수 없다. 이처럼 회사의 운영에 있어서 회계와 세금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장부기장과 세무신고에 대해서는 세무사의 힘을 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능력 있는 세무사를 만나는 것은 사업의 번창을 위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평소 올바른 세무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물론, 추후 받을 지도 모르는 세무조사에서도 세무사의 역량은 여실히 차이가 난다. 단지 기장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이유 하나로 세무사를 선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경험과 관할 세무관내에서의 성실도가 증명된 세무사를 선택해야 한다. 세무사도 고객 못지않게 중요한 사업파트너이다.
세무사에게 지급되는 비용으로는 월별로 지급되는 기장대행보수(기장료)와 법인세 신고 후에 청구되는 세무조정대행보수로 나눠진다. 기장료는 세무사협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매출규모에 따른 보수를 근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일상생활도 더 이상 세금과 회계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요즘 서점에서는 쉽게 풀어쓴 회계나 세테크관련 코너가 북적인다고 한다. 이는 세금에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과 납세 요령이 비단 회계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CEO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뜻하는 것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주부, 학생들까지 회계나 세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다. 날아 온 고지서를 가산세가 부과되기 전에 날짜에 맞춰 재깍재깍 은행에 납부하는 것만이 세테크의 다가 아니다. 가정에서도 부동산, 자동차와 관련된 각종 세금, 기타 국세나 지방세 등을 이해하고 대처해야 한다. 가정 회계의 기본은 가계장부이다. 요즘은 고리타분한 가계부를 쓰지 않더라도 인터넷에서 간편한 가계장부 프로그램을 손쉽게 다운 받을 수 있다. 내 호주머니에 돈이 얼마가 있는지, 우리 집 생활비가 얼마가 남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장기적인 재정플랜을 세울 수 있겠는가. 회계적으로도 건강한 가정을 꾸려기 위해서는 수입은 물론 지출에 대해서도 항목별로 체크하고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맺음말>
지난 1월 23일 TV에 대통령이 나오셨다. 주몽을 기다리던 국민들을 물리치고서라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으셨던 모양이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억지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양책은 일체 쓰지 않았으며 이는 쓴 보약이 되어 차기 정부가 경제정책을 세우는데 부담을 덜어 줄 것이라고 자랑스레 말씀하셨다. 대통령이 내리신 결단을 중에는 경기 위축할 염려 때문에 참모들이 강하게 반대하였으나 실은 우리 경제를 건강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하셨는데, 그 예로 접대비에 실질적인 상한선을 둔 조치와 집장촌의 폐쇄를 들으셨다.
하지만, 불필요한 접대비의 지출을 봉쇄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실제 영업현장에서 느껴지는 접대문화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처리하기 위한 비자금만이 더욱 음성화, 조직화 되었을 뿐이다. 이것은 집장촌 단속 조치의 결과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장촌이 사라진다고(실제로 이미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성매매산업의 규모가 줄어들거나 사양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다만 부동산에서 봤던 풍선효과의 학습을 성매매산업에서도 복습할 뿐이다. 서울 시내의 성매매업소는 과거 지저분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집장촌에서 나와 대로변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번듯한 인테리어에 반짝이는 간판을 걸어놓고 보란 듯이 영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 성매매업 종사자(업소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인지도 모르겠지만)들이 거리로 나와 버젓이 홍보활동을 하는 것마저 볼 수 있다.
각종 규제나 제한조치로는 정부나 세무당국에서 기대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흔히 우리나라가 사업하기 힘든 나라라고 한다. 엄청난 자본이나 막강한 권력을 등에 지고 있지 않는 이상 열 중에 일곱 여덟은 설립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정리 수순을 밞는다고 한다.
청년 취업대란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서 인재를 찾는 일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웬만한 자영업자들은 자기 월급 챙기기도 힘들 정도로 업종에 무관하게 경쟁이 치열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는 부동산값은 사무실 임대료 또한 높여 놓았고, 밖에 나갔다 하면 도로는 늘 정체이다. 길에 쏟아 붇는 교통비용은 고기값에 못지않은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이것 외에도 사업자에게 들어오는 태클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아무리 여건이 열악하더라도 살아남고, 지배하고, 1등을 차지하는 회사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