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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0   x프로젝트 실패기 (1)


x프로젝트 실패기
Biz Diary/N×× | 2007/10/20 13:00
 1. 승패가 갈리다.


2007년 IT업계의 최대 사업인 x프로젝트 수주전에 마침표가 찍혔다. 이번 발표로 지난 수개월 동안 숨죽이며 기다리던 수십 개의 업체들의 희비가 갈라졌다.

결과가 나오자 이제껏 제 각기 얽히고설킨 각 업체들의 이해관계도 한 순간에 헤쳐모여 실마리가 풀렸다. 사업권을 획득한 SI업체는 기준이 되어 업체들의 줄을 세웠다. 장비를 납품하는 벤더들, S/W제공업체, 그리고 그 밑의 대리점들이 줄줄이 새끼로 굴비를 엮듯 올라왔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기다리던 N××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2.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x프로젝트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고대하던 사업이 다른 업체에게 넘어가는 지켜보는 일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아침 점심을 굶어도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적표는 우리의 약점을 고스란히 반영시켰다. 큰 프로젝트에 약하다는 징크스도 깨지 못했다. 사업 초반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9회말 역전 홈런을 맞은 김병헌처럼 그라운드에서 내려왔다.

떨어진 사업을 자꾸 돌이켜 봤자 어차피 죽은 자식 **만지기라지만 이유라도 알아야 속이 편해질 듯 했다. 


잠정적으로 가장 큰 원인은 N××의 ‘소극적인 영업정책’이라고 결정지었다. 뚜껑이 열릴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어 봐도 될똥말똥한 사업인데 안이하게 견적서 한 장 밀어놓고는 나 몰라라 했다. 그럴 것이 아니라 담당자를 찾아가 바지저고리라도 잡고 늘어져야 하지 않았나 싶다. 한마디로 맨주먹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모르게 꿈나라에 빠진 시간에도 경쟁업체는 밤새도록 고객을 쑤시고 다니며 영업을 한 모양이다. 이미 SI업체와 야합하여 끝난 뒷물에 들어가 순진하게도 들러리만 섰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N××은 단기전에 약하다. 대부분의 대형 프로젝트는 집중력 싸움이다. 프로젝트가 오픈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죽기 살기로 맨투맨 밀착영업을 펼쳐야 한다. 뒷심이 부족하면 막판에 밀릴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원인은 잘못 맞춰진 영업의 초점이었다. 특히 SI업체에 대한 영업을 소홀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영업에 자신 없으면 울타리라도 넉넉하게 쳐놓아 방어했어야 했다.

N××의 영업은 전통적으로 장비업체나 그 밑의 대리점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그들보다 큰 그림을 짜야하는 SI업체에 대한 영업은 늘 뒷전으로 제쳐두게 된다.

N××의 영업적 고집은 일종의 습관이다. 익숙한 영업방식을 취하면서도 먹고 살만한 길을 닦아왔기에 구태여 여기서 벗어나려는 노력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장비업체나 그 대리점이 갖고 있는 정보는 귀중하다. 고객과 가장 가까운 그들을 통해 고객의 환경을 분석하고, 필요사항을 점검하고 소요량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프로젝트에서는 어김없이 최전방에 SI업체가 버티고 있다. 그들을 따돌리지 못한다면 등에 업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

그러니 SI업체를 등한시 했던 x프로젝트에서 N××이 미끄러지는 것도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x프로젝트의 준비과정은 나름 철저했다. 지난 몇 달간 고객사에 현장지원인력을 파견한 유지보수업체와 함께 세부작업까지 밑그림을 그렸다. 현장실사를 거쳐 어렵게 얻은 정보를 반죽하여 오븐에 넣었다. 이제 맛있는 파이로 구워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오븐에서 파이를 꺼내려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SI업체가 먹음직스런 파이를 가로채 버렸다.

정보의 가치는 타이밍에 결정된다. 매도 타이밍을 놓친 것은 명백한 우리의 실수이다. 여타 중소 규모의 시공사업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리 만무하다. 하지만 x프로젝트처럼 파이가 큰 사업은 이에 걸맞은 울타리나 영업력이 뒷받침되었어야 한다.

x프로젝트에서도 영업의 첫 단추는 장비업체에게 꿰매더라도, 만들어진 옷은 SI업체에게 팔았어야 했다. 아니면 다른 먹잇감이라도 넘겨줘야 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사업이 대형화될수록 구매권한은 장비대리점의 영업사원에서 SI업체의 전문구매부서로 넘어갈 것이 뻔하다.

SI영업은 박하다. 아무리 작은 발주라도 호락호락 내주지 않는다. 실력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힘든 길이라고 계속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국내 IT사업에서 SI업체의 입김이 더욱 드세질 전망이다. 

얼마 전 마포에 있는 Y사도 모SI업체의 계열사로 통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Y사는 N××의 오랜 고객이다. 고객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을 갖기보다, 이를 통해 SI영업의 발판을 만들 기회를 먼저 살펴야 한다.

SI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점점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 언제까지 음지의 왕 노릇을 할 수는 없다.



3. 남 다른 견적서


수십 억대를 호가하는 장비 수주전이라면 소위 '윗선 영업'을 통해 다 된 밥도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전산실 안에서 벌어지는 공사는 '실무선 영업'이 제일이다. 즉 노력만 하면 상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실무자 영업은 복잡하지 않다. 정치색도 없다. 강점 하나만 잘 이끌어내면 누구든 설득할 수 있다. 영업적인 스킨십을 백분 발휘하던지, 우리 아니면 안 된다는 기술력을 부각시키던지, 사용 자재에 대한 독점 공급권을 얻어오던지 남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면 된다.

스킨십을 하겠다고 무턱대고 술자리로 불러낼 생각부터 해서는 안 된다. 

구매 담당자가 제일 먼저 기다리는 것은 견적서이다. 흔히 견적서라고 하면 단순히 가격과 납기만 적어 놓으면 다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종이 한 장짜리라도 그 업체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한 눈에 보일 수 있도록 간략하게 표현해 놓아야 한다. 담당자의 눈이 확 떠질 만한 차별성을 보여줘야 한다.


1) 견적의 3박자


쓸 만한 견적서가 나오려면 3박자가 잘 들어맞아야 한다. 원가, 인건비, 그리고 적정한 마진이다. 허술한 고객이라면 적당히 주물러 만든 견적서라도 능히 발주서를 남발하겠지만, 요즘같이 구매정보가 만천하에 드러난 세상에서는 그런 녹녹한 고객을 만날 행운은 드물다.


자재의 경우 흑백논리를 펴서는 안 된다. 비싼 자재가 좋고, 싸구려는 형편없다는 식의 설명은 구식이다. 고객에게 꼭 들어맞도록 맞춤형 자재를 제안해야 한다. 중요한 곳에는 좋은 자재를 넣고 대충 넘겨도 될 만한 곳에는 저렴한 자재를 넣어 잘 버무리고 반죽하여 설계해야 한다. 고만고만한 자재단가 비교는 난쟁이끼리 키 자랑하기이다. 경쟁력은 누가 넘치지 않고 정확하게 자재를 담았느냐에 판가름 난다. 젓가락 꼽아놓은 모래성 무너뜨리기를 하듯 불필요한 자재를 골라내야 한다.

인건비를 살펴보자. 가장 큰 이익이 숨어있는 곳이 여기이다. 시간이 갈수록 기술이 고도화되면 자재가격은 떨어 질 수 있지만, 인건비는 오르게 마련이다.

인재는 부가가치의 보고이다. 열흘을 해도 막막한 일이라도 호흡 잘 맞는 팀이 투입되면 이틀 만에 끝낼 수 있다. 또 작업자의 제안으로 기존 설계를 바꿔서 매입원가를 30%도 줄여 본 적도 있다. 현장에서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기존 인프라를 활용했던 경우였다.


마지막으로 공사 견적서에는 업체 마진을 적게끔 되어있다.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회사는 이윤을 위해 일을 하지만, 액면 그대로 고스란히 인정해주는 고객은 없다. 힘든 줄다리기를 각오해야 한다. 결국 속내를 숨겨야만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견적서가 되고 만다. 원가투입은 불투명해지고, 실제 마진은 왜곡된다.


위의 3박자가 탄탄하면 누구에게 내놔도 떳떳한 견적서가 된다. N××의 견적서는 어떤가? 자재가격의 비중이 너무 높다. 좋은 품질의 자재를 사용하다며 변명을 늘어놓지만 영리한 고객은 넘어오지 않았다.

올 한 해 성적표를 살펴보면 지난 몇 년간 누렸던 고품질 고마진정책을 손봐야할 때가 되었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2) 이익 높이기


거래를 통해 이익을 많이 남기려면 비싸게 팔던지 아니면 싸게 사야한다. 판매가를 결정하는 것은 영업의 특권이다. 구매예정가의 100%에 근접하는 가격에 판매를 유도하는 것이 영업의 역량이다. 이를 위해 고객과 싸우고 설득하며 때로는 협박해야 한다. 

반면 우리를 포함한 많은 회사들이 영업에 비해 안살림을 챙기는 일에는 소홀히 한다. 매출을 10% 늘리는 것보다 매입비용을 10% 줄이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영업에 기울이는 노력의 절반만으로도 이익을 높일 수 있다.



4. x프로젝트의 쓰나미


아무튼 x프로젝트는 억울한 사업이다. 이런 우리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얼마어치 계산대에 올려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고객에게 비싸다는 답을 들었다. 현장의 실사 정보를 견적서에 명확히 주지시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우리 앞에선 여러 회사가 있다. 고객정보를 책임지기로 한 L사, SI업체에 마도역할을 하며 발주대행을 하는 P사, 고객의 일괄창구인 S사. 책임을 돌리자면 끝도 없다. 사업을 놓친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신 짊어질 수 없다. 결론은 버킹검, 우리가 져야 할 짐이고, 책임이다.


x프로젝트의 실패는 N××을 믿고 우리를 앞단에 세웠던 T사와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어 놓았다. T사는 한참 잘나가고 있는 스위치공급업체이다. 앞서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N××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관련 시장에서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T사의 제품은 x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공급이 확정적이었지만, 결국 N××과 함께 낙마를 하고 말았다. 

다른 벤더에 밀려 공급권을 잃었고, 공사마저 다른 업체에게 빼앗긴 T사는 큰 충격에 빠졌다. 자연스럽게 N××에게도 책임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이미 끝나버린 x프로젝트보다 T사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신뢰는 반드시 누구를 속일 때만 금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의 기대에 못 미쳤을 때도 신뢰는 여지없이 깨어졌다. 



5. 딛고 일어서기


퇴근 후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SI업체의 G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대전으로 내려가 실사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x프로젝트의 결과를 듣기 위해 구매담당자라던 G과장을 찾아간 건 이미 결론이 지어진 다음이었다. G과장은 구면이었다. 공교롭게 몇 년 전 K사의 백업센터 구축사업으로 우리와 악연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 터무니없는 가격인하 요구를 용감하게 거절했던 일을 용케 기억하고 있었다.

x프로젝트의 후행사업이 조만간 시작될 모양이다. 예산을 잡기 위해 현장 실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물론 x프로젝트의 1/5도 되지 않은 규모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기회이다.

다음 날 KTX를 타고 대전에 내려갔다. 현장 입주업체와 사전 미팅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x프로젝트의 구축을 위해 땀을 흘리는 참여업체들의 모습이 보였다. 날짜가 촉박한 사업이라 밤낮없이 작업이 한참이었다. 남 잘되는 꼴에 마음이 상했는지 올라오는 내내 속이 불편했다.

x프로젝트의 실패는 보약이다. 물론 사업을 수주했다면 올 가을은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N××의 아킬레스건을 단련시킬 기회는 갖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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