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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지퍼 클레임
Biz Diary/A×× | 2007/02/22 10:37
설을 며칠 앞두고 P사로부터 클레임이 걸렸다.

재작년 이맘때 즈음 거래를 시작한 P사는 최근 A☓☓의 비즈니스에서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거래처로 성장한 중요한 고객이다. 당연히 올 해 우리가 P사에게 기대하고 있는 숫자 또한 상당하다.

P사와의 거래에 있어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사고 없이 끌고 온 것이 신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P사의 오더는 몇 번 더 신경을 쓰고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문제가 터진 것이다.

클레임 내용은 가방 메인 지퍼의 작동에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제기된 제품은 2가지 컬러로 제작된 10,000개짜리 PVC 핸드백이다. 조그만 파우치도 아니고, 가방치고는 적지 않은 수량이다.


긴급 소집된 대책회의에서 문제의 원인과 대처방안을 논의하였다.

표면적인 원인으로는 가방의 메인지퍼 불량이 지적되었다.

물건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가방인데, 온 힘을 기울여야 열릴 정도로 지퍼가 뻑뻑하다면, 제품의 기능적인 가치는 상실했다고 보아야 한다.

가방에 사용되는 수많은 자재 중에서 지퍼를 적은 소요량에도 메인자재 축에 넣는 까닭도 그 역할의 중요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단순하게 자재 불량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교통사고 환자에게 파스와 1회용 밴드만을 처방하고 퇴원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

MRI도 찍고 CT촬영도 해봐야만 이번 클레임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이번 사고는 총체적 부실의 결과물이라 진단할 수 있었다.

물론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에 대한 책임은 불량자재를 공급한 자재업체와 이를 확인하지도 않고 곧바로 생산에 투입한 자재담당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면밀히 진찰해보면 이 외에도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가방에 생명을 불어넣는 디자인과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것이다.

저가-대량생산의 특징을 갖고 있는 판촉용 가방의 디자인에서 철지퍼는 피해야한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럼에도 디자인팀에서 이를 어긴 것은 메탈느낌을 살리고 싶다는 고객의 요청 때문이었다. 물론, 고객이 원하는 것은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최우선순위에 두고 일을 진행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무게중심은 우리가 잡고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고객에게 휘둘려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간과하는 것은 고객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생산한 제품이 고객의 매출을 증대시키는 본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결국 고객의 아까운 돈만 날리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조금만 더 염두에 두었다면 마땅히 나일론지퍼로 교체하도록 고객을 설득했을 것이다.


생산관리에서도 허점이 있었다. 디자인이 확정된 제품이 하자 없이 생산되느냐에 대한 책임은 생산관리에서 맡고 있다. 대개의 경우 제품의 완성도 테스트는 생산라인의 끝자리에 앉아있는 포장반에서 맡고 있다.

공장측 인력이 넉넉하거나 생산일정의 여유가 있는 경우는 별도의 검수반을 두기도 하지만, 요즘은 중국에서도 이런 공장은 눈을 씻어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제품을 박스에 담기 전에 반드시 지퍼를 열고 닫아야 하는 포장반 여공의 날카로운 손놀림이 이런 큰 하자를 놓쳤다는 것은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 보다는 촉박한 납기에 떠밀려 긴가민가하면서 실어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빠듯한 생산일정에 맞춰 라인마다 매일 수백 개의 물량을 쏟아 내야 하는 공장의 입장에서 볼 때도 자재 불량은 달갑지 않은 악재인 것이 사실이다. 하나의 라인을 정지하게 되면 다른 자재가 입고될 때까지 최소한 반나절이상 수십 명의 공원을 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냥 가자’라는 순간의 오판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초기에 진압하는 것과 상처가 여기저기 번질 만큼 번진 다음에 수습하는 것에는 내용적으로나 결과적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제품의 패킹을 하기 전에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불량지퍼를 걸러냈더라면 납기는 하루 이틀 지연되었을지는 몰라도 고객의 클레임까지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불필요한 선적비용과 관세를 이중으로 지불하게 되었고, 이는 둘째치더라도 이제껏 P사와 어렵게 쌓아온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은 셈할 수 없을 만큼 큰 손해였다.


돌이켜보면 이번 일은 ‘충분하지 못한 의사소통으로 야기된 예고된 인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팀은 핫라인을 통해 고객과의 충분한 의견조율을 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생산성이 고려된 디자인이 관철될 수 있도록 고객을 설득해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불필요한 장식이나 봉제를 바꾸는 작업 하나 만으로도 전체 납기를 수일씩 당길 수도 있다. 원활한 제품생산은 결국 고객에게도 득이 되어 돌아감을 알려야 한다.

자재파트는 실시간으로 디자인팀과 소요자재 및 일정을 협의하여 자재의 원활한 공급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생산관리자는 공장의 공원이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생산의 문제점을 미리 발견하고 제품이 완성되어 선적될 때까지 품질을 확인하여야 한다.


덜떨어진 가방 하나를 만들더라도 완성되기까지는 조직의 안과 밖에서 무수히 많은 언쟁과 협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은 마치 눈과 귀를 막고 달려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을 게을리 하고, 자기 입장만을 염두에 둔 채 아집을 부려서는 조직이든 개인이든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TV브라운관에서 고객의 눈을 사로잡았던 가방은 홈쇼핑 채널 쇼핑호스트의 화려한 손길을 거쳐 고객에게 전달되었다.

디자인에 매료되어 흡족해졌던 마음은 열리지 않는 지퍼를 당기는 순간 싸구려 저질가방에 대한 실망감으로 변질되었을 것이다.

고객의 실망은 사은품으로 받은 가방에 불쌍하게 매달려있는 지퍼에만 머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부 고객은 택배박스 안에 함께 들어있던 메인상품까지 싸잡아 원망하게 되었고, 마침내 반품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핑계는 없었던 것이다.


요즘 고객은 갈대와 같다하지만, 홈쇼핑고객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여지없이 흔들린다. 화면을 통해 버튼으로 선택한 구매와 매장에 나가 인간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제품을 구매하는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변심 또한 가볍게 리모컨을 누르듯 그렇게 순간적으로 일어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P사의 클레임이 있은 뒤, 우리는 담당자를 찾아가 A☓☓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갖은 설득을 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메인상품의 반품에 대한 손해배상은 우리에게 묻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될 듯하다. 만약 가방단가의 열배가 넘는 메인상품에 대한 클레임을 책임지라 했다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되었을 것이다.

반품 수량은 전체 물량의 40%수준에서 결정 되었다. 그래도 4,000개이다.

사무실을 꽉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수량이다.


판매취소로 인해 입은 손해는 둘째치더라도 이 거대한 물량을 어떻게 처치해야하는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L×를 다닐 때의 일이다. 대만에서 수입한 케이블모뎀을 전국에 판매했다가 부산지역에 납품한 제품에 이상이 생겨 수개월에 걸쳐 댁내에 설치된 케이블모뎀을 반품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매출 취소로 인한 마이너스 금액에 대한 손해보다는 반품에 소요되는 물류비용과 창고비용 그 외에도 이런 저런 명목으로 지출되었던 간접적인 손해가 비용이 몇 배는 더 컸었다.

그 때 ‘손해의 크기는 반품물량을 처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례하여 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고스란히 우리 창고에 보관 중인 가방 4,000개에 대한 창고비용은 꺾인 택시 미터기처럼 정확하게 올라가고 있다.

가방은 계절과 유행을 타기 마련이다. 하루 이틀 시간만 보내다보면 철 지난 가방은 시장바구니보다 못한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반품된 제품은 태생적인 장애를 갖고 있다.


신속한 처분을 위해 판매가격은 둘째치더라도 매입할 만한 거래처를 물색해보겠지만, 어쩌면 4,000개의 가방을 운동장에 쌓아놓고 불질러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경제적인 방법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운이 좋아 적당한 가격에 판매한다손 치더라도 하자가 있는 제품을 그대로 내 보냈다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처럼 개운치 못한 부담이 남을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언제 누구에게 팔릴지도 모르는 가방에 나일론 지퍼를 다시 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번 사건은 가방산업이 결코 녹녹한 비즈니스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 단 하나의 실수로 그 동안 피땀 흘리며 쌓아온 공든 탑이 잔인하게 쓸려 갈수도 있다.

우리의 잘못으로 납품된 제품을 철수하는 것은 우리는 물론 P사에게도 쉽게 잊혀 지지 않는 쓰라린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만든 제품으로 P사도 덩달아 고객의 매를 맞은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주저앉아 P사에서 쫓겨날 수는 없는 일이다. 차라리 수익이 안 맞아 우리 손으로 작별을 고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물러선다면 우리가 좋은 본보기가 된양 두고두고 업계에서 회자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기일전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몇 배의 공을 들이더라도 P사에서 실추된 신뢰를 다시 찾고 A××의 이미지도 새롭게 해야 한다.


얼마 전 과거 누나가 몸담았던 F社가 가방 내수사업에서 손을 띌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사실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F社처럼 실력 있고 기반이 탄탄한 회사마저 내수 사업에서 등을 돌릴 정도라면 국내 가방사업이 봉착한 난관이 어떠하리라는 것쯤은 가늠할 수 있다.

그들의 얘기대로 가방산업이 사양산업인 것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에 보면 사양산업을 사회, 경제, 기술 혁신 따위의 형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쇠퇴하여 가는 산업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A××이 앞으로 어떤 자세로 비즈니스에 임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하는 일이 사양산업이 될 수도 아니면 첨단산업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결국 조직이 어떻게 변화의 선두에 서서 스스로 변화하느냐에 달린 문제라 할 것이다. 


F社가 내수시장을 포기했든 아니든 우리가 그들이 선택한 길을 쫒을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에게 놓여 있는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해 우리 길을 개척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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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China Recruiting, P과장
Biz Diary/A×× | 2006/10/01 12:36

1. P과장을 만나러 청도에 가다

청도행 10시 비행기를 타려면 한바탕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중국노선 중에서는 가장 빨리 예약이 마감된다. 입국일에도 하루를 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대기자가 풀려서 티켓은 받았지만, 보딩패스를 받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게다가 출국일은 월요일이다. 제 아무리 non-stop 리무진버스라해도 출근길 정체를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릉에서 올라 탄 내부순환로는 강변북로에 내려서기까지 지루하게 밀리고 있었다.

교통체증을 예상 못 한것은 아니였지만,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남아 있는 시간은 50분. 그 안에 보딩패스를 받고 예약해 둔 로밍폰을 찾아서 출국심사대를 빠져나가야 한다.
본래 사람 많고 복잡한 장소에서 뛰는 것을 금기시 하는 나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강남에 사는 누나는 차도 안 밀렸는지 나보다 늦게 나오고서는 여유있게 면세점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비행기 출입문이 곧 닫힌다는 엄포성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Gate를 통과했다. safe이다.

이번 출장은 P과장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P과장은 길림성이 고향인 중국 교포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구정이였다. 당시 우리 제품을 생산하던 S공장에서 생산라인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대목이면 늘 발생하기 마련인 생산라인의 사건 사고를 P과장 덕분에 정상적으로 풀 수 있었다.
하나 하나 차분하게 라인을 정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무엇보다 공장에서 약속한 생산량은 철야를 하더라도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그런 책임있고 성실한 모습에 믿음이 가서 눈여겨 보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S공장에서 일하던 P과장이 회사를 그만 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연락을 넣어보니 P과장은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어했다. 고향에 내려간 것도 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친지 초청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물론 P과장은 우리 사무실에 앉혀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초청문제는 우리가 나서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였다.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고용특례' 등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기 위해서는 노동부 및 출입국관리소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높았다. 아직까지는 서비스업이나 건설업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 한명숙총리가 재외교포의 고국 취업을 위해 5년 간 출입국이 자유로운 방문취업용 복수비자(일명 H-2비자)를 새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아직 발효 시기가 미정이고, 그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불법취업을 알선할 수도 없는 일이였다.

대신, P과장에게 중국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했다. 한국행이 어렵다면 P과장에게는 차선책이 될 수도 있었다. 수화기를 건너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우리 제안을 반기는 듯 들렸다.
이번 출장스케줄에 맞춰서 고향에 내려간 P과장을 청도로 올라오라고 했다. 얼굴을 보면서 구체적인 근무조건을 조목조목 짚어봐야 한다.


2. 왜 중국 현지직원이 필요한가?

창업 초기부터 중국 현지에 생산관리자를 두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고정적으로 돌리는 하청공장도 없었고 오더가 꾸준하지 못했기 때문에 관리자까지 둘 형편은 못 되었다. 대신 우리 작업이 걸릴 때면 디자이너를 보내거나 아니면 직접 날아가서 생산품질을 잡아주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이제는 처음보다 스타일도 다양해졌고 생산오더도 늘어났다. 샘플 디자인하기도 벅찬 디자이너들이 생산까지 컨트롤하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출장도 한 두번이지 작업이 있을 때마다 나갈 수는 없는 일이였다.
게다가 비행기티켓, 호텔, 식대 등 한 번 출장갈 때마다 드는 경비만 해도 솔솔치 않았다. 어림잡아도 현지에 관리자 한 명을 두고도 남을 듯 싶었다.

중국에 우리 사람을 한 명 심어놓겠다는 것은 비단 생산관리를 위해서만은 아니였다. 이제는 A××이 중국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늘었다. 중국 하청공장에 우리 직원을 앉힌다면 생산관리 뿐 아니라, 공장에서 매입하는 원부자재를 우리가 직접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

원청과 하청공장 사이에서 자재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이다. 대부분의 자재는 원청에서 준비해서 입고를 시켜주고 있는데 열이면 여덟야홉은 부족하다고 연락이 온다.
우리 입장에서는 속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유분까지 넉넉하게 챙겼건만 shortage라니, 공장말만 믿고 다시 자재를 챙겨서 보내기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 되어버린다.
빠듯한 납기를 어기지 않으려면 air로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신속하게 중국자재를 구해서 대체해야 한다.
일단 자재가 공장에 들어간 다음에는 공장에서는 이를 볼모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연히 원청과의 실랑이는 대부분 공장측 주장대로 일단락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 눈으로 직접 물건을 보고 살 때도 속아 넘어가기 딱 좋은 곳이 중국인데, 아무리 믿을 수 있는 거래처라해도 우리 손을 거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에누리가 생기기 마련이였다.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직원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하다.

중국에 직원을 두는 것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중국 현지채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사람을 어떤 자리에 두느냐에 따라 오히려 회사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하청공장과 현지 직원과의 결탁되는 경우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멀리있는 본사 직원의 눈을 속이는 것 쯤은 김치부침개 뒤집기 수준이다.
두번째는 중국에서 구매하는 원부자재의 매입의 투명성이다. 이 곳의 자재시장에도 Gray market이 있어서 출처가 불분명한 부자재가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
하물며 한족 공장에서도 자재파트만은 외지인에게 맡기지 않고 오너의 친척들이 꾀어 차고 있다.
세번째 디자인 유출에 대한 우려이다. 지금까지는 오더가 확정된 스타일만 중국에 들어갔지만, 앞으로는 계약이 끝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도 샘플이 오갈 것이다.
P과장을 선택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마지막 한 가지는 P과장이 S공장 출신이라는 점이다. S공장은 최근까지 V사 못지 않게 우리 오더를 생산하고 있는 하청공장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S공장의 생산라인을 들었다 놓았다 해야 할텐데, 친정집을 상대로 P과장이 어떻게 조리를 할 것인지 걱정이다.

결국은 믿을 수 밖에는 없는 일이다. 내 옆에 앉은 직원이 하는 일도 100% 알 수는 없는 법인데, 하물며 멀리 중국에 앉아 있는 직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은 결코 관리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보다는 어떻게 동기부여하고 encourage하는냐. 그리고 얼마나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가가 백배는 더 중요한 일이다.


3. Working Condition과 중국지사의 비전

이런저런 걱정반 기대반으로 P과장을 찾아갔다.
막상 P과장을 만나자,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불거져 나왔다.
급여 외에도 회사측에서 부담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P과장이 머무를 처소를 마련해야 했다. 급한대로 S공장 기숙사에 짐을 풀긴 했지만, 신세를 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무작정 얹혀 있을 수는 없었다.
개발구이긴했지만 아파트 임대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방 3칸 짜리가 인민폐로 800위안, 우리 돈으로 약 십만원. 생각보다 저렴했다.

땅이 넓어서 그런지 교남에서는 집 보다는 차에 대한 가치가 우리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택시나 자전거 외에는 별 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여기서 차는 필수이다.
다마스급(일명 빵차)이 월 2500위안. 이 돈이면 현지 숙련공의 두 달치 급여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에 유류비, 톨케이트비, 통신비 등을 모두 감안하면 P과장 급여와 거의 맞먹는 돈이 들을 것이다.
A××과 P과장, 양쪽 모두 모험이 될 수도 있는 채용이지만, 과감히 투자하기로 했다.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곧 조직이 된다.
언젠가는 P과장이 만들어 놓은 조직이 본사가 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분간 P과장의 역활은 우리가 풀어놓은 오더에 대한 생산 관리를 하는 수준일 것이다. 조금 발전한다면 중국side의 자재의 구매 및 delivery를 챙기는 역활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앞을 보면 중국 현지에서 샘플실 운영을 맡아야 할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지사의 역활을 하는 것이다. 본사에서 디자인한 패턴을 바탕으로 중국 샘플실에서 제작을 한다면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국내 샘플실의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중국 내수시장을 target으로 한 영업조직까지 거느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사실 상 모든 비지니스가 중국에서 일어나는 셈이니, 본사가 중국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4. 출장을 마치고

어제 왔다가 오늘 돌아가는 짧은 출장이였다. 2가지 목적은 달성했다. P과장과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였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서로 합의를 했으니, 이제는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P社의 요청으로 디자이너 이광희(이광희 부띠크)씨와 공동 디자인하는 파우치의 생산라인도 짚어 보았다. 이광희씨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름이 높은 패션디자인계의 거목이다. 처음으로 하는 공동작업이니만큼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는 작업이다.

김위찬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공동 집필한 '블루오션 전략'을 보면, 전략캠퍼스라는 재밌는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나도 아직 반밖에 못 읽었지만, 책을 읽어본 분은 기억하리라 믿는다.)
어떤 비지니스 든 4가지 액션프레임워크(제거, 감소, 추가, 창조)만 제대로 그린다면 전략캠퍼스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지금 머물고 있는 레드오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P과장의 recruting은 중국을 우리의 블루오션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초기지를 세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두려워 하는 4분기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비해 이번 추석은 조용히 넘어가는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제 상해에서 연락이 왔다.
일본계 고객에게서 받은 오더를 완제품으로 상해로 넘긴 것이였는데 원단 자체에 문제가 생긴 듯 했다. 추석연휴에는 라인에 걸어 놓아야만 납기를 지킬 수 있을 텐데, 우선 청도에 있는 P과장을 먼저 올려보냈다.
아무래도 다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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